728x90

기꺼이 나로 살아갈 용기가 필요하다면 아직 미숙한 자아를 가진 것이다. 성숙한 자아는 용기 있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용기가 부족하면 비겁, 용기가 넘치면 만용처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에서 용기는 정답이다. 용기를 지키는 사람만큼 성숙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


날쌘 기운이라는 뜻을 가진 용기(勇氣)는 그 의미와는 다르게 그 의미가 완성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옛날 사람들은 한자적 의미로 빠르게 내리는 결단을 용기라 표현했던 건 아닐까. 그만큼 자신 있기 때문에 빠르게 내리는 결정을 용기있다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정말 그런 게 맞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빠르게 내릴 수 있는 결단력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용기, 진정한 용기를 그 과정까지로 표현하면 어떨까. 그 과정이 다 소진되면 용기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용기를 내기까지 수많은 고민과 행동이 있어야 한다. 아직 고민과 행동이 있지 않다면 그때를 기다리는 것도 용기라 생각한다.


그리고 기꺼이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용기를 가지고 무언가를 행할 때 자유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청춘이라서 용기가 필요할 때가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누군가에게 그 시기가 오는 것은 아닐까. 용기를 가진다는 것은 자유를 회복하는 일인 셈이다. 이러한 용기가 자유로서 행복해질 때까지 우리는 계속 배워야 한다. 그것을 깨닫는 과정이다.

반응형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필요없는 존재의 ‘변태(變態)’  (0) 2023.12.14
행복한 단독자 (feat,살아가는이유)  (0) 2023.12.14
되돌아간다는 것.  (0) 2022.03.22
예단  (0) 2022.01.24
회색인  (0) 2022.01.12

+ Recent posts